독일령 남서아프리카는 1884년부터 1915년까지 현재의 나미비아에 있던 독일 제국의 식민지였다. 1915년 대영 제국의 일부였던 남아프리카 연방에 합병되어 남서아프리카가 되었고 1990년 현재의 나미비아가 되었다. 독일 본토의 1.5배인 835,100km²의 면적을 갖고 있었으며 스바코프문트와 뤼데리츠 등지에서 독일령 남서아프리카 시대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역사1882년 11월 16일, 독일 브레맨 출신 상인 아돌프 뤼데리츠는 비스마르크 수상에게 그가 남서 아프리카에 건설할 계획이었던 거래소에 대한 보호를 요청했다. 이 권한이 부여되자 그의 직원 하인리히 포겔상은 지역 추장들로부터 토지를 구입하고 후에 뤼데리츠시로 불릴 앙그라빼께냐시를 설립하였다. 이 결과 영국의 영토인 웰비스 베이와 부속 섬들을 제외한 전체 영토가 독일제국 영토로 합병되게 되었다. 1884년 4월 24일, 그는 영국의 침략을 억제하기 위해서 이 지역을 독일제국 보호 하에 두었다. 1884년 초반, 독일제국해군의 노틸러스호는 식민지의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서 남서아프리카를 시찰했고 이후 라이프치히호와 엘리자베스호의 방문결과, 영국의 묵인과 더불어서, 호의적인 정부보고서가 나왔다. 1884년 8월 7일, 독일제국의 국기가 남서아프리카에 세워졌다. 독일제국의 남서아프리카에 대한 토지 소유권은 베를린 회담을 통해 확인되었다. 하지만 그 당시 원주민들에게 토지는 사유재산의 개념이 아니었고 계급에 상관없이 개인에게 양도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 입장에서 독일제국의 토지 소유권 주장은 터무니없었다. 그리고 10월, 새로운 서아프리카 감독관으로 임명된 구스타프 나흐티갈이 무브호를 타고 도착했다.초기에 식민지의 목적은 독일제국 정착민들이 거주하고, 광물을 개발하고, 독일 공산품을 판매할 땅을 원주민으로부터 빼앗는 것이었다. 1885년 4월, 독일 은행가들, 기업가들 정치가들의 비호아래서 설립된 남서아프리카 독일 식민 협회(DKGSWA)는 광산 개발 독점권을 부여 받았고 뤼데리츠의 부도난 기업들로부터 자산을 사들였다. 5월, 하인리히 에른스트 괴링은 식민지의 새로운 감독관으로 부임하였고, 그의 집행부를 오트짐빙에 설립하였다. 그리고 1886년 4월 17일, 유럽인들을 위한 법과 원주민들을 위한 법이 따로 존재하는, 식민지 이원적 법률제도 발안이 통과되었다. 뤼데리츠는 1886년 오렌지 강 탐사 중 익사하였는데, 식민지를 개발하는 데 있어서 사적 자본이 아닌 공적 자본이 사용되어야 한다는 비스마르크의 정책에 따라서, 협회는 뤼데리츠의 모든 토지와 광물자원 개발권을 구매하였다. 그 후 1908년, 뤼데리츠 베이에서 다이아몬드가 발견되었고 금, 구리, 백금 등 여러 광물들과 함께 다이아몬드가 주요 투자 광물이 되었다. 1908년 한 해 동안만 다이아몬드 채굴량은 39,000캐럿에 달했으며, 1909년 채굴량은 그 당시 £1,000,000 가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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